능묘제도
능묘 주위에 석물을 배치하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적 가치관과 맞물려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뿐만 아니라 중인, 서인들도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돌아가신 분께 예와 격식을 갖추고자 노력했습니다. 이후 점차 형식화되면서 조각 작품과 같이 상징적인 의물(儀物)로 남게 되었습니다.
능묘조각
사람의 형상을 한 돌 조각상, 석인(石人)은 능묘를 수호하는 석물(石物) 중 하나로 왕을 섬기는 문관과 무관을 조각하여 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석인은 외형에 따라서 크게 문인석과 무인석, 동자석 등으로 나뉩니다. 문인석은 머리에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채 홀(忽)을 잡은 모습을, 무인석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손에 칼을 쥔 형상을, 동자석은 도교, 불교, 유교, 무속신앙 등 여러 요소들이 혼재된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보여줍니다.
소장품 특징
지금 보시는 석상들은 경기도 지방에서 제작된 문인석들로, 복장을 통해 전형적인 문관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홀(忽)은 관료들이 조회할 때 손에 쥐는 상아나 나무로 만든 물건입니다. 의례용이나 명을 받들어 기록하기 위한 수판(手板)으로 사용되었는데,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전부터 사용되었고, 우리나라는 당나라의 4색 공복 제도를 받아들인 신라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고려 성종에 의해 홀 제도가 마련되었다는 내용을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에 정한 관복 제도에 따라 왕세자 이하 1품에서 4품까지는 상아홀을 들고, 5품 이하 9품까지는 괴화(槐花)로 만든 목홀(木笏)을 들었으며, 이러한 제도는 조선말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소장품 재질
위 석상들의 재료는 지하 깊은 곳의 마그마가 천천히 냉각되어 고화된 암석인 화강암입니다. 우리나라 지질의 2/3가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화강암은 경기도 지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중부지방의 대리암, 경상도-전라도 등 남부지방의 응회암, 제주도의 화산암, 현무암, 용암석, 조면암 등 지역별 주요 석질을 통해서 지리적, 환경적 특색까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